닮은 듯 다른, 그러나 너무나도 닮은 두 세대
처음엔 그저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었습니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나는 아이들의 손끝에서 퍼지는 놀이의 힘을 매일 가까이서 느꼈습니다. 단순한 블록 하나, 단추 하나, 조각 그림 하나도 아이들의 두뇌를 움직이고 마음을 열게 하던 순간들. 그런데 문득, 나무 교구를 정리하다 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관절이 불편하셨고, 작은 물건을 다루는 걸 좋아하셨죠.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만큼, 어르신들도 놀이가 필요하구나.’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노인 돌봄에 감각 자극 놀이를 접목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 아이와 어르신, 몸과 마음이 닮아 있다
아이들은 세상을 처음 만나고, 어르신은 다시 세상과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아직 미숙하고, 어르신은 서서히 잃어갑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통된 신호가 많습니다. 손끝 감각이 예민하거나 둔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날 때의 호기심이나 두려움, 낯선 사람 앞에서의 경계심, 반복되는 일상에서 찾는 안정감까지.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며 몸의 작은 떨림, 눈빛의 방향,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손짓을 읽게 되면서 알게 됐습니다. 어르신도 똑같이 반응하신다는 것을요. 특히 치매 초기 어르신은 아이처럼 순수한 질문을 던지거나 반복된 설명에도 고개를 갸웃하시죠. 그런데 아이가 놀이나 교구로 조금씩 표현을 넓히듯, 어르신도 손끝을 움직이는 작은 자극에 점점 밝아지는 표정을 보여주십니다. 어쩌면 이 둘은 성장의 시작과 인생의 마무리라는 점에서 마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유치원 교사의 눈에 비친 ‘놀이의 힘’, 그 가능성
놀이를 통해 아이는 세상을 배웁니다. 언어가 부족한 아이는 장난감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손 조작 능력을 키우며 뇌를 자극받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놀이 효과가 노인 돌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이와 어르신 모두 말보다 몸의 감각이 먼저 반응하고, 눈앞의 자극에 솔직하게 반응합니다. 예를 들어 간단한 나무 퍼즐을 아이에게 주면 모양을 맞추며 성취감을 느끼고, 어르신에게 주면 기억을 더듬고 손의 감각을 일깨우며 뇌를 활성화합니다. 이 작은 차이가지만 ‘놀이’라는 방식은 그대로 통합니다. 유치원 교사였던 나는 그런 점에서 교구 하나, 활동 하나를 만들 때마다 ‘이건 어르신과도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손가락을 세우고, 접고, 맞추고, 그림을 완성하고. 이 모든 과정이 어르신에겐 재활이고 치료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감정적 교류가 약해지는 고령자에게는 놀이 중 나누는 짧은 눈맞춤, 칭찬 한마디, 손을 잡아주는 제스처가 일상의 활력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3. 감각 자극 놀이가 어르신에게 필요한 이유
어르신 돌봄에서는 ‘신체 기능 유지’가 주요 목표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뇌 건강은 신체적 활동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입니다. 감각 자극 놀이, 특히 손끝을 사용하는 활동은 소근육 운동뿐 아니라 뇌의 특정 영역을 활성화시켜 기억력, 판단력, 공간 인지력을 자극합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경도인지장애(MCI)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인지 자극 훈련’의 일부로 감각 교구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유아 교구에서 차용한 형태, 질감, 색채 분류 활동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단지 뇌 기능 향상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놀이를 통해 어르신은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고, 손자녀나 활동가와 함께하면서 외로움을 덜 느끼게 됩니다. 실제 하트앤핸드의 목재 교구를 사용하는 돌봄 시설에서는 어르신이 놀잇감을 손에 들고 ‘이건 내 어릴 적에도 있었던 거야’라며 기억을 되살리는 사례도 종종 나옵니다. 그 순간 어르신은 단순한 대상이 아닌, 하나의 삶을 지닌 주체로서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치원 교사였던 내게 있어 이건 무척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놀이가 자기표현의 도구였다면, 어르신에게는 존재감을 되찾는 방식이었던 셈이죠.
유치원에서 보던 아이들의 모습과 요양원에서 마주한 어르신들의 모습이 겹쳐 보일 때가 많습니다. 느리지만 반응하는 몸짓, 작은 변화에 환하게 웃는 표정, 반복되는 놀이 속에서 쌓여가는 신뢰. 그 모습은 아이나 어르신이나 닮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위한 교구로 시작했던 나무 장난감을 이제 어르신과 나누고 있습니다. 장난감은 놀이를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교감의 도구이며, 기억을 자극하고 감정을 환기시키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노인을 위한 돌봄 사업은 단지 ‘케어’를 넘어,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의 시작에는 따뜻한 손길, 나무의 촉감, 천천히 웃게 만드는 놀이라는 단어가 함께 합니다. 유치원 교사로서의 경험은 제게 어르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주었고, 저는 그 시선을 따라 아이와 어르신, 그 사이의 놀이를 연결하는 일을 계속해가고 싶습니다.